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두리간이해수욕장.

맹랑한 꿈을 가진 사람이 좋아

아침 일찍 출근해야겠다는 결심이 언제 지켜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주의 끝에 다다를 때마다 항상 다음주부터는 일찍 출근할 거라고 다짐합니다. 크게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아도 다짐은 해볼 수 있잖아요. 늦잠 잤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른 문장들로 표현하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오후 4시까지는 세미나 자료를 계속해서 준비했습니다. 토요일 밤에 3시간 정도 작업하고 오늘 3시간 정도 작업했으니 대략 6시간 정도 걸린 셈입니다. 이것 말고 다른 자료를 준비하는데에도 4시간 정도 들였으니, 총 10시간 정도를 세미나 준비에 소비한 셈이 되겠군요. 원래 쓰던 키노트 템플릿 대신 Marp를 쓰기로 결정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키노트로 같은 분량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2배 정도는 더 걸렸을 것입니다. 한 번의 세미나에서 2개의 논문을 다루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준비하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실험을 할 시간이 모자라요. 교수님께 학기 중에는 하나만 하자고 의견을 피력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도교수님 사단에서 처음으로 랩미팅을 가졌습니다. 원래는 지도학생 별 원온원 미팅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같이 모아서 일주일에 한번씩 랩미팅을 하기로 했었거든요. 랜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교수님께 툭툭 던지면서 논의하는 일이 원온원 미팅을 할 때 보다는 어려웠습니다. 사람이 몇 추가된 것 뿐인데 잘 안되더라고요. 생각를 미리미리 정리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발표 자료도 미리미리 만들어둬야 할 것 같습니다. 동기가 발표 자료를 준비해왔더라고요.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당황스러웠습니다.

학교 문서수발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학교 방송국 앞으로 우편이 왔다는데 담당자가 저로 되어있었대요. 방송국 활동을 끝낸지 꽤 되었는데. 심지어 학부를 졸업했는데. 우편을 전해주려 오래간만에 방송국 오피스에 들렀습니다. 모르는 친구가 앉아있길래 우편을 전해주면서 학번과 부서를 물어봤습니다. 내가 뽑은 국원이었어요. 자기가 뽑아서 같이 활동한 국원도 모르는 국장이 되어버리면 부끄러움에 도망칠 수 밖에 없습니다.

학식 줄이 길어서 방에서 뭉개다 버거킹에 갔는데 패티가 다 떨어졌더라고요. 그냥 편의점에서 저녁을 때우고 동아리방에서 어싸인을 했습니다. 첫 어싸인이라 수학 문제들을 푸는 과제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문제들을 풀면서 큰일났다 싶었습니다. 모든 것을 까먹었더라고요. 확률과 통계 쪽은 상황이 나았습니다. 미적분과 선형대수가 문제였어요. 검색의 힘으로 조금씩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문제를 푸느라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첫 어싸인이 어려우면 한 학기 내내 괴로울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학기는 많이 괴롭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는 7시 40분이었고 다음에 눈을 떴을 때에는 9시 20분이었습니다. 8시 반에 알람이 맞춰져 있는 걸 보고 조금 더 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9시 반 알람이더군요. 그냥 자체휴강했습니다. 개강 2주차부터 늦잠으로 결석이라니 출결 점수가 벌써부터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억울하게도 졸리진 않아서 여유롭게 씻고 2교시 수업을 위해 방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학생증이 찍히지 않더라고요. 분명 기숙사에서 나올 때에는 찍혔던 거 같은데. 학생증을 발급받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고장나서 건물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을 온몸으로 연기하며 다른 사람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결국 2교시는 지각했어요. 수업 시간 언저리인데 왜 건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지. 억울했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수업 듣는게 재미있습니다. 과거의 나에 비하면 미쳤나 싶겠지만 사실입니다. 교수님들께서 강의를 잘하시는 탓도 있겠지만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가끔씩 뒤통수를 치는 질문들은 강의에 재미를 더해줍니다. 매년 같은 강의를 진행하느라 재미가 없어진 교수님들을 위한 학생들의 속 깊은 배려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의 건강에 좋을 것 같습니다.

강의실에서 나오며 와장에게 인사하다가 폰을 떨어트렸습니다. 강화유리필름 새로 붙인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다시 붙여봤자 엠티 때 또 깨먹을 것 같아서 당분간은 깨진 채로 다니기로 했습니다.

12시 반에 미용실을 예약했었는데 약간 늦었습니다. 강의실에서 바로 출발하면 15분 안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거울 앞에 앉아서는 투블럭을 그만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8년 동안 유지한 같은 머리 스타일 앞에서는 우발적이기 쉬운 것 같습니다. 아직 아래 블럭의 머리가 길어서 티가 나지는 않지만 차차 층이 옅어지지 않을까요. 사장님께서는 다음번에는 꼭 다운펌도 예약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2024. 02. 27.,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점심으로는 베라보에서 오이스터 마제소바를 먹었어요. 저번주 일요일에 갔다가 정기 휴일이라 실패했었던게 생각나서 다시 방문했습니다. 다행히 오늘이 이 특선의 마지막 날이었어요. 국물은 조금 짰지만, 올리브와 굴의 조합이 참 맛있었습니다.

가게 인덕션이 몇 개 고장나서 사장님께서 한동안 베라보바를 열지 않았었는데, 이번주부터 다시 열 계획이라면서 사장님께서 놀러오라고 초대해주셨습니다. 베라보바 갈 생각 없었는데 사장님께서 초대해주신다면야 어쩔 수 없죠. 절대 제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닙니다. 절대로.

2024. 02. 27.,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10번길 18 1층 101호.

연구실로 가는 길에 커들러에 들러서 차랑 과자를 포장했어요. 도토리 모양의 과자가 너무 귀여워 보여서 하나 샀습니다. 주문이 밀려서 꽤나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지렁과 친구들을 만났어요. 포장을 기다리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예컨대’라는 말을 사람들이 평소에 쓰는지 안 쓰는지 토론하다 이번주 블로그 제목에 넣으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견을 반영하려 노력하였으나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기각되었습니다.

2024. 02. 27.,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꽃이 폈습니다.

출근해서는 모델 학습 파이프라인을 위한 코드를 완성했습니다. 학습을 돌려놓고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FSDP에서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학습 중간부터 각 디바이스들이 가리키는 step이 달라져서, epoch이 완료된 상태에 진입한 디바이스가 다른 디바이스들을 정지시켜버린 채로 다른 디바이스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제 재현에 시간이 걸려서, 코드를 약간 고친 후 돌려놓고 과제를 하다가 다시 어떻게 터졌는지 확인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너무 정신사나워서 일단 과제부터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오류는 내일의 나에게 맡겼어요.

사실 과제는 어제 다 하긴 했습니다만 LaTeX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3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커들러에서 사 온 과자로 저녁을 대충 해결하고 스트포트와 라켓볼을 쳤습니다. 오래간만에 쳐서 재밌었습니다. 레몬워터가 서울로 거처를 옮긴 이후로 라켓볼을 자주 치지 못해서 슬퍼요. 라켓볼 메이트가 2명 정도만 더 생기면 좋겠습니다.

체육관으로 가면서 학생증이 고장났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몇 번을 확인해봐도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잘 모르겠습니다. 학부 학생증이 아직 작동해서 다시 발급 받을 때 까지는 학부 학생증을 들고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10시 미팅이 11시로 미뤄졌습니다. 교수님 오피스로 가는 길에 시간이 남아서 은행에 들러 학생증을 다시 발급받았습니다. 모두가 학생증을 신규 발급하는 와중에 재발급 손님이라니 행원도 당황하지 않았을까요. 재발급에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아서 제 시간 안에 교수님 오피스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근래에 교수님을 자주 만나서 크게 이야기를 나눌 사항은 없었어요. 부우의 진행 상황에 집중했습니다.

학식을 먹고 싶었는데 부우가 학식까지 내려가기를 너무 귀찮아해서 그냥 학생회관 편의점에서 점심을 때웠습니다. 가는 길에 커리어페어 부스에 앉아있던 친구가 인사를 해줬어요. 나도 언젠가 졸업하면 저기에 앉아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부우와 밥을 먹으면서 학생증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이 적금 만기일인게 생각났어요. 아침에 학생증 재발급 받으면서 적금도 탔어야했는데 까먹고 하지 못했어요. 그 길로 은행에 다시 가서 업무를 봤습니다. 그냥 나중에 모바일로 할까 했는데 창구에 가길 잘했어요. 우리은행 앱을 하도 안쓰다보니 인증서도 없었고 한도도 걸려있었습니다. 창구에서 직원 분이 각 과정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셨고 다행히 내 돈을 어디 잃어버리진 않았습니다.

연구실에 돌아가서는 FSDP가 잘 돌지 않는 루트 커즈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샘플러 문제인 줄 알았는데 살펴보니 샘플러는 죄가 없었습니다. Context length 때문에 하나의 step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음 스텝으로 건너뛰도록 구현해두었는데, backward 과정에 FSDP 동기화 타이밍이 걸려 있어서, 오류가 발생한 디바이스가 1개의 데이터를 더 처리하게 되면서 마지막에 짝이 맞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torch.cuda.barrier를 통해 명시적으로 동기화 타이밍을 지정해주려고 하였으나 잘 되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대신 데이터셋을 전처리하는 과정에서 context length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필터링하도록 코드를 수정했습니다. 루트 커즈를 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일단은 돌아가는게 중요하니까.

모델을 돌려놓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교수님과 학생들이 내가 체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질문할까봐 마음을 졸였고 몇몇 질문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appendix도 좀 훑어봐야겠어요. 그래도 큰 흠 없이 논문 1개에 대한 발표를 마쳤고, 딱 1시간이 지나있었습니다. 세미나 목표 시간이 1시간이었는데, 2개를 발표하기에는 확실히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교수님도 처음 한번씩만 2개를 하고, 이후에는 1개씩만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이 줄어서 다행이에요.

2024. 02. 28.,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학생회관.

학식을 먹고 동아리 설명회를 위한 덱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당장 오늘 밤에 써야해서 걱정했는데, 동아리 탐방 때 만들어 둔 템플릿을 써서 크게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작년 2학기 때처럼 사람들이 많이 안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많은 새내기들이 설명회를 들으러 와주었어요. 올해 두각을 나타내는 뉴비들도 많아서 기대가 됩니다.

2024. 02. 28., 경북 포항시 남구.

러닝을 하러 대운동장을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보여서 철길숲으로 갔습니다. 철길숲에서 러닝은 처음이었는데, 최근에 계속 트랙에서만 뛰다가 주변 환경이 계속해서 바뀌는 산책길에서 러닝을 하니까 시간이 빨리 가서 좋았습니다. 다만 오르막 내리막이 생각보다 많아서 힘들었어요. 돌아오는 길이 계속 오르막이었습니다.

나는 1교시가 미워요. 왜 중요한 수업들은 죄다 1교시 2교시에 깔리는 걸까요. 그래도 오늘은 제때 일어나서 늦지 않았어요. 전자출결 앱을 확인해보니까 화요일에 자체휴강 때린 것도 출석으로 바꿔두셨더라고요. 수강정정 기간이어서 그러셨나봅니다.

점심 이후에는 간단히 웹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동아리 오픈 세미나를 위해서 일정표를 올려둘 곳이 필요했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Next.js로 만들까하다가 Astro로 만들었습니다. 개인 홈페이지도 Astro로 만들었는데, 자바스크립트 코드를 최소화시키면서 최대한 정적인 페이지를 생성하는게 목표인 메타 프레임워크라 참 마음에 듭니다. 처음에는 SSG를 주로 밀고 나갔는데, SSR에서도 강점을 보이는 것 같아서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됩니다.

저녁에는 체스를 만나서 롯데마트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내일 가는 엠티에서 먹을 야식거리를 체스가 사겠다고 말해서 같이 장을 보기로 했었거든요. 마트를 둘러보면서 각종 냉동식품들과 어묵탕 재료 그리고 마라샹궈 소스를 샀습니다. 마라샹궈 소스를 하나만 사려고 했는데 두 개 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 건 금요일의 일이 되겠습니다.

2024. 02. 28.,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2024. 02. 28.,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2024. 02. 28.,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베라보바에 놀러갔습니다. 2주동안 바 영업을 쉬시면서 메뉴도 완전히 개편하셨더라고요. 마파두부가 생겼는데, 밥을 참을 수 없는 맛이라서 혹시 밥도 있냐고 여쭤봤는데 금방 데워주셨습니다. 밥과 함께 먹는 마파두부가 정말 맛있었어요. 술을 몇 잔 마시면서 웹페이지 개발을 마무리하고 과제에서 틀린 부분들을 고쳐서 다시 제출했어요. 사장님들과 오래간만에 긴 대화도 나눴습니다. 바에서 사장님들이 다른 손님들께 높임말을 쓰는게 어색해보이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2024. 02. 28.,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 4.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코노에 들렀습니다. 요즘은 뮤지컬 넘버를 많이 들어요. 그 영향인지 코노에서도 넘버를 많이 불러봅니다. 재밌더라고요.

일주일 내내 흐려서 걱정했는데 엠티 당일이 되어서야 하늘이 파랗게 개었습니다.

새내기 때에는 엠티 가는게 특별한 일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코로나도 겪고 고학번이 되어가면서 엠티가 정말 재밌는 일로 여겨지기 시작되더라고요. 두 달 전쯤부터 부우와 어플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엠티를 준비했습니다. 내가 제일 신나서 엠티 가자고 데굴데굴 굴렀는데 엠준위를 하지 않는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실질적으로 모든 일은 어플과 부우가 하긴 했지만.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대이로 188.

엠준위들은 11시에 먼저 만나서 이마트로 갔습니다. 고기나 채소 같이 당일에 현장에서 사야하는 것들을 샀어요. 소규모 엠티는 처음이라 양을 조절하는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모자란 것 보다는 남는게 낫다는 생각으로 장을 넉넉하게 봤어요. 체크인 시간까지 시간이 꽤나 많이 남아서 마트 안에 있던 떡볶이집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3인 세트였는데 메뉴의 모든 구성이 짝수였어요. 3인 세트가 아니라 우정테스트라는 이름으로 팔아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걱정이 늘었습니다. 우리끼리 놀러가는걸 누가 시샘하나봐요. 날씨는 꽤나 추웠고 바람은 무지막지하게 불었습니다. 준비한 야외 게임을 할 수 있나 걱정이 되었어요.

2024. 03. 01., 경북 포항시. 2024. 03. 01., 경북 포항시. 2024. 03. 01., 경북 포항시.

월포로 가는 택시에서 나는 자꾸만 창문을 열었습니다. 깊은 군청색의 바다가 몇 점의 구름으로 마무리한 하늘과 맞닿아 있었어요. 내가 사련하는 산책로를 따라 이십분을 내달렸고 나는 당장에라도 내리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 출발하는 다른 동아리원에 비해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어요. 짐을 풀고 냉장고를 정리했습니다. 코 앞의 바다에 나가서 게임을 할 환경을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바람은 많이 멎었고 햇빛은 꽤나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모래사장이 아니라 자갈 해변이었는데 부우가 돌을 몇 개 주워서 물수제비 뜨는걸 보여줬어요.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신기해보입니다.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두리간이해수욕장.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두리간이해수욕장.

동아리원들이 속속들이 도착했고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명찰을 걸어줬습니다. 이번 엠티에서 내가 준비한 명찰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정말 잘 만들지 않았나요?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두리간이해수욕장.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두리간이해수욕장.

학교에서 출발하지 않은 쿼티를 기다리며 나머지 사람들과 바다에 다시 놀러나갔습니다. 체스가 사진을 많이 찍어줬어요. 사진 찍을 때 정말 잘 웃지 못하는 편인데 체스가 날 카메라 앞에서 웃게 만들어줬어요. 덕분에 웃는 표정의 사진을 몇 개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올리진 않으려고요.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두리간이해수욕장.

그동안 다른 동아리원들은 뭘하나 봤는데 돌을 주워서 동아리 이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너무 귀여웠어요. 다들 새내기로 보였습니다.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두리간이해수욕장.

쿼티는 3시 반쯤에 도착했고 해변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낮 게임을 했습니다. 모든 게임들은 부우가 준비해왔어요.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두리간이해수욕장.

첫번째 게임은 ‘Blind SQL Injection’이었습니다. 고깔로 얼굴을 가리고 해변에 꽂아 놓은 플래그들을 뽑으면 이기는 게임이었어요. 두번째 게임은 팀 안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Alice와 Bob이 Malloy의 방해를 피해서 최대한 많이 공을 주고 받아야하는 게임이었어요. 이런 긱한 게임을 즐겁게 즐길 수 있는게 동아리 엠티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이 끝나고는 피구를 즐기다가 방에 들어갔어요.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해안로2271번길 2.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해안로2271번길 2.

같이 온 친구들 중에 비건인 친구는 없어서 저녁 식사는 자연스럽게 삼겹살로 흘러갔습니다. 비빔면 8개는 조금 많나 싶었는데 다행히 양이 딱 맞았어요. 고기는 조금 많나 싶었는데 불행히 꽤 많이 남아버렸습니다. 나는 덕분에 밤에 맛있는 마라샹궈가 만들어질 것을 기대하며 속으로 웃었습니다. 마시멜로는 괜히 샀나 싶었는데 동아리원들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바베큐장이 불판으로 되어 있어서 마시멜로는 못 굽겠다 싶었는데 레몬워터가 어디서 불판 빼는 도구를 찾아오더니 불판을 치워줬어요. 동아리원들이 기다렸다는듯이 마시멜로를 맛있게 구워먹었고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달아서 더 못먹겠다고 하면서 계속 구워먹는게 재밌었어요.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해안로2271번길 2.

밤 게임은 실내에서 피피티를 넘기면서 했습니다. 부우가 9개나 준비해왔더라고요. 문제 제목과 컨셉이 다 긱스러워서 우리 동아리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우리 팀은 낮 게임에서 다 꼴찌를 했는데 밤 게임에서는 1등을 쓸어담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컴퓨터 천재 컬그, 컴퓨터 박사 체스, 그리고 케이팝 박사 및 천재 화가 베타(?)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Baby-step giant-step

천재 화가 베타의 작품 한 점 감상하고 가시겠습니다.

밤 게임이 끝나고는 둘러앉아서 술게임을 했어요. 각종 술게임의 인트로를 외치는게 이렇게나 부끄러운 일인줄은 처음알았습니다. 오래간만에 하려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다같이 조금씩 마시면서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어요. 이 글을 보는 다른 동아리원들이 있다면 왜 바보게임 이야기는 안하냐고 하겠지만 그 이야기는 여기 안 쓸겁니다. 이 바보 괴롭히는 천재들아.

소주에 타려고 홍초를 사는 걸 보고 다들 미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봤는데 다들 마셔보더니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뿌듯했습니다. 물론 1.5리터는 좀 많았던거 같아요.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해안로2271번길 2.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해안로2271번길 2.

어느정도 분위기가 무르익고 준비해온 야식들을 요리했습니다. 마라샹궈를 볶고 어묵탕을 끓였어요. 체스가 고생해주었습니다. 마라샹궈에 채소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서 소스를 3개 살걸 후회했지만 그렇게 맵지 않으면서 마라향은 확 나는 마라샹궈가 완성되어서 괜찮았어요. 어묵탕에는 체스가 가져온 청양고추를 넣었는데, 체스가 정말 잘 가져왔다 싶었습니다.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해안로2271번길 2.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해안로2271번길 2. 2024. 03. 01.,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해안로2271번길 2.

이어서 치킨너겟과 김말이를 튀겼어요. 냄비에 팬 요리를 하는 건 정말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불 조절이 익숙하지 않아서 치킨너겟 첫 판을 다 태워먹은 이후로 튀기듯이 굽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해서 나머지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남은 마라샹궈 소스와 조합이 좋았습니다. 체스와 레몬워터가 조리한 칠리새우로 야식을 마무리했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야식을 정말 다채롭게 준비했네요.

밤새 이야기 할 작정으로 소주를 꽤 많이 샀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다같이 잠에 드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새벽 4시 쯤 다들 잠에 들었습니다.

밤 바다도 가보고 해 뜨는 것도 보려고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그 대신 아침에 혼자만의 방탈출을 즐겼습니다. 화장실을 가려고 했는데 문이 잠겨있었어요. 이걸 어쩌지 하다가 유튜브를 찾아보니 얇은 플라스틱 판으로 문을 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방법으로 따보려고 노력하기를 몇 번. 방 어디선가 주워온 열쇠로 따보려고 시도하기를 몇 번. 그러다 어플이 깼고 펜션 주인 분께 전화해서 열쇠더미를 받아옴으로써 사건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몇 번 철컥하면서 걸리는 소리가 났었는데 아쉬웠어요. 아니 그런데 것보다 누가 화장실 문에 열쇠 문고리를 달아요. 화장실은 동전으로 열리는 문고리가 국룰 아니냐고.

사람들이 너무 피곤해보여서, 아니 사실 너무 배불러보여서, 아침 라면은 생략하고 더 재우다가 10시쯤 모두를 깨웠어요. 언제 다 치우나 했는데 손발이 많으니까 또 금방 치우더라고요.

펜션 앞에서 급하게 기념사진을 찍고 학교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습니다. 해안도로로 가기를 기대하며 왼편에 앉았지만 바다는 볼 수 없었습니다.

레몬 과자 맛이 나

나는 맹랑한 꿈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동아리 친구들과 놀러 갈 것을 바라는 사소한 기대부터 사랑받고 싶다는 발칙한 소망까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살펴보는 모습은 누구나 사랑스러워 보이거든요. 그래서 더욱 맹랑한 꿈이면 좋겠습니다. 그 맹랑함에 속아보고 싶습니다.


권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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